NEWS&MEDIA
J·C·P 고객사 회사장 언론 보도자료
호국 보훈의 달, 경찰청 전사·순직 경찰관 추모

경찰청은 현충일인 6일 오전 서울 중구 경찰기념공원에서 '전사·순직경찰관 추념식'을 열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목숨을 바쳐 헌신한 선배 경찰관들의 넋을 기렸다.   이날 추념식에는 김창룡 경찰청장을 비롯한 경찰 관계자들과 경찰영웅 유가족, 경우회·참전경찰유공자회·경찰유가족회 등 유관단체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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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왕’ 농심 신춘호 회장 별세

농심 창업주 고(故) 신춘호 회장의 장례 사흘째인 29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 추모객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날 오전 송용덕 롯데지주 부회장 등 롯데그룹 핵심임원들이 함께 빈소를 찾았다. 송 부회장은 이날 오전 10시 20분 쯤 이동우 롯데지주 사장, 이영구 롯데그룹 식품BU장, 이봉철 호텔BU장 등과 함께 조문했다. 신춘호 회장의 조카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현재 일본에 체류 중인 관계로 조문이 어려운 것으로 전해졌다.   롯데 임원진 외에도 대한제분의 이건영 회장과 진옥동 신한은행장, 박성호 하나은행장 등이 빈소를 찾아 고인을 추모했다.   오후에는 박찬호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특별고문, 김남정 동원그룹 부회장, 구자열 LS그룹 회장, 허연수 GS리테일 부회장, 허태수 GS그룹 회장, 임정배 대상 대표이사, 손경식 CJ그룹 회장 겸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등이 빈소를 찾았다. 손 회장은 고인에 대해 "경총의 회장단 중 한 분으로 오래 전부터 알고 지냈다"면서 "식품업계 거인, 경제계 거인, 역사적인 증인이셨다"고 회고했다. 이어 "저희 처조카와 혼인을 맺은 사돈 집안"이라면서 "생전에 매년 많은 노력을 경제와 기업 발전에 쏟으셨다. 영면하시길 기원한다"고 덧붙였다. 손 회장의 처조카는 신춘호 회장의 장녀인 신현주 농심기획 부회장의 장녀 박혜성씨와 혼인한 사이다.   안성탕면의 장수 광고 모델로 활동한 탤런드 강부자씨도 빈소를 찾아 고인을 추모했다. 강씨는 "13년간 농심 광고모델을 했다. 신 회장님께서 광고모델로서 저에게 애정을 가지셨다고 들었다"면서 "뜻이 훌륭하신 분이셔서 제가 늘 존경해왔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강희석 이마트 대표, 홍정국 BGF 대표, 허인 KB국민은행장 등이 빈소를 찾았다.   40년간 '농심맨'으로 신춘호 회장과 회사를 함께 성장시킨 박준 농심 대표이사 부회장도 빈소를 지키고 있다.   고인의 발인은 30일 오전 5시다. 장지는 경남 밀양 선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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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발효유 선구자’ 윤덕병 한국야구르트 회장 1주기 추모식

  2019년 6월 26일 오전 7시 노환으로 별세한 윤덕병 한국야쿠르트 회장의 1주년 추모식이 지난 6월 26일 한국야쿠르트 인재개발원에서 치뤄졌다.   윤 회장은 1927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1969년 한국야쿠르트를 설립해 50년간 기업을 이끌었다.   윤 회장은 불모지와 다름없던 국내 유산균 시장에 유산균 발효유를 대표 건강음료로 성장시킨 발효유 산업의 선구자다. 1971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마셔봤다는 국민 간식 ‘야쿠르트’를 국내 처음으로 생산해 판매했다.   1960년대말 윤 회장은 우리나라 축산의 미래가 우유 가공업에 달려 있다고 생각해 ‘건강사회건설’이라는 창업이념을 바탕으로 유산균 발효유 사업을 시작했다.   윤 회장은 판매방식도 당시로는 획기적인 방문 판매를 선택했다. 여성들의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주부들을 대상으로 ‘야쿠르트 아줌마’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이 후 국내 유통 역사의 신기원을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국내 최고의 판매 조직으로 성장했다.   1976년에는 식품업계 최초로 중앙연구소를 설립했다. 중앙연구소는 설립 후 20년 만에 독자적인 자체 유산균을 개발해 유산균 국산화 시대를 열었다. 현재까지 국내 식품업계를 대표하는 유산균 연구의 메카로 자리 잡고 있다.   윤 회장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도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을 지원하는 사업에 아낌이 없었다. 평소 “우리가 십시일반으로 이웃에게 도움을 줄 때 이 세상은 좀 더 따뜻해 질 것이다”며 양로원과 보육원 등 소외된 곳을 찾아 봉사했다.   창업 초기부터 전 임직원이 참여하는 사회봉사단 ‘사랑의 손길펴기회’에는 이러한 윤 회장의 뜻이 담겨 있다.   윤 회장은 장학재단을 설립하며 인재육성에도 힘을 쏟았다. 2010년 12월에는 사재를 출연해 저소득층 자녀에게 학자금을 지원하는 우덕장학재단을 설립하고 지금까지 학생들에게 장학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이처럼 이웃을 위해 아낌없는 나눔을 실천한 노력을 인정받아 1988년 국민훈장 모란장, 2002년 보건대상 공로상, 2008년 한국경영인협회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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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심완구 전 울산시장 시민 영결식

(울산=연합뉴스) 장영은 기자 = 민선 첫 울산시장과 울산광역시 첫 시장을 지낸 고 심완구 전 시장의 명복을 빌기 위한 시민 영결식 행사가 11일 울산시청 햇빛 광장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는 광역시 초석을 다진 고인의 치적을 시민과 함께 기리며 애도하고자 마련됐다. 행사는 영구 입장과 개식, 국기에 대한 경례, 고인에 대한 묵념, 고인 약력 소개, 고인 추모 영상 상영, 조사와 추모사, 유족 대표 인사, 추모시 낭송, 헌화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송철호 현 울산시장은 추모사에서 "시장님이 울산을 위해 바치신 모든 열정은 아무리 강조하여도 부족하고 저는 이러한 시장님의 뜻을 이어 끊임없는 고뇌와 고민을 하며 '시민과 함께 다시 뛰는 울산'을 만들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다"고 했다. 이어 김영삼 민주센터의 김덕룡 이사장은 "울산은 고인의 피와 땀으로 이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시정을 추진하는 열정을 멈추지 않았고 오늘의 울산을 만든 큰 일꾼"이라고 추모했다. 송 시장은 "이제 우리는 시장님이 펼쳐놓으신 큰 꿈 위에 희망과 행복, 울산의 가치와 미래, 함께하는 사랑을 심어 시장님이 바라시던 울산다운 울산, 미래를 열어가는 울산, 대한민국의 최고 도시 울산, 세계에 우뚝 서는 울산을 위해 시민 모두 하나 되어 앞으로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박맹우 전 울산시장은 "암과 싸우면서도 울산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생각난다"며 감사 인사를 올렸다. 심 전 시장의 장남인 심경훈씨가 유족 대표로 나와 시민 영결식을 마련해준 울산시에 감사 인사를 전했고, "아버님 진심으로 사랑합니다"라고 마지막 인사를 하면서 목이 메 잠시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이날 시민 영결식장에 문재인 대통령이 조화를 보내 고인을 애도했다. 박병석 국회의장,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등도 조화를 보냈다. 고 심완구 전 울산시장 시민 영결식 11일 울산시청 광장에서 열린 영결식에서 박맹우 전 울산시장이 추모사를 하고 있다. [촬영 장영은] 심 전 시장은 8일 향년 82세 나이로 별세했다. 1938년 울산에서 태어난 심 전 시장은 부산고와 성균관대를 졸업했고, 1972년 신민당 총재 보좌역 등을 시작으로 정치에 입문해 12대와 13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1995년 울산시 첫 민선 시장에 당선된 뒤 1997년 울산시가 경남도에서 분리돼 광역시로 승격하면서 초대 광역시장이 됐다. 심 전 시장은 2002년 한일 월드컵 울산 경기장을 유치하고 도심 속 최대 생태공원 울산대공원 조성, 신항만 개발 사업 등에 앞장서는 등 울산 도시기반 시설을 확충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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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정호종 경장 영결식 엄수

“비록 짧은 생이었지만 가장 빛나고 보람 있는 생이었기에 당신의 삶은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9일 오전 10시 30분 경남 통영의 한 장례식장. 구자영 남해지방해양경찰청장의 조사 낭독에 장내에 깊은 침묵이 흐른다. 숨죽인 현장에서 간간히 들리는 흐느낌. 구 청장은 “가슴을 짓누르는 커다란 비통함을 삼키며 존경하고 사랑하는 소중한 동료를 떠나보내야 한다”면서 “세상의 모든 시름 다 잊으시고 저 푸른 바다 위를 훨훨 날아 부디 편안히 영면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지난 6일 경남 통영시 홍도 인근 해상 동굴에 갇힌 다이버를 구하다 안타깝게 순직한 통영해양경찰서 고 정호종(34) 경장의 영결식이 엄수됐다. 남해지방해양경찰청장(葬)으로 치러진 이 날 영결식에는 김홍희 해양경찰청장과 구자영 남해해경청장, 해경 동료와 유가족이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눈물로 배웅했다.   2019년 1월 입직해 장승포 구조거점파출소에서 근무하며 위험한 구조 현장을 마다하지 않고 임무를 수행해 온 고 정 경장은 지난해 12월 낚시어선 특별단속 업무유공자로 선정돼 통영해양경찰서장 표창을 받았다. 동료들은 “매사에 적극적이었고 모든 일에 대해서 열심히 배우고자 노력했던 든든한 후배였다”면서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돌아올 줄 알았는데 이렇게 우리 곁을 떠나게 돼 침통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반윤혁 순경은 초도사에서 “당신이 있어 우리는 늘 마음 든든했고, 언제나 거침없이 구조의 현장으로 달려갈 수 있었다”면서 “죽음의 문턱에서도 경찰 본연의 사명을 잊지 않은 당신의 숭고한 신념에 절고 고개 숙여진다”고 애통해했다. 순직한 고인에게는 1계급 특진과 옥조근정훈장이 추서됐다. 영결식을 마친 운구행렬은 통영시립화장장으로 이동했다. 고 정 경장은 거제추모공원에 임시 안치되었다가 순직 심사를 거친 후 국립묘역에 안장될 예정이다. [출처: 부산일보] http://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20060914004773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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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보훈의 달 전사 · 순직경찰관 추념식 개최

호국보훈의 달 전사 · 순직경찰관 추념식 개최 - 전현직 警友 · 유가족 등 故人들의 숭고한 희생정신 기려 -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전사 및 순직경찰관 추념식이 지난 6월 6일 토요일 낮 12시 경찰청 앞 경찰기념공원에서 민갑룡 경찰청장, 강영규 경우회 중앙회장, 김을로 참전경찰 국가유공자회장, 권옥자 경찰유가족회장을 비롯한 유가족, 유관단체장, 전현직 警友 등 2백 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되어, 故人들을 추도하고, 그들의 희생정신을 기리는 자리가 되었다.   이날 추념식은 국민의례, 조총 및 묵념, 경과보고, 추모의 벽 명패 봉안, 헌화 ‧ 분향으로 진행된 가운데,   민갑룡 경찰청장은 식사를 통해, 『지난 세월, 우리는 일제침탈과 6‧25 전쟁의 상흔을 굳건히 이겨내고 기적같이 자유민주주의와 경제도약을 함께 이루어 냈다.』면서 『대한민국의 괄목할 만한 성장 뒤에는 나라를 위해 묵묵히 헌신하신 수많은 전사·순직경찰관들이 있었다.』고 언급했다.   또한, 『다가올 미래에도 후배들은 선배님들의 숭고한 정신과 영광스러운 발자취를 따라 자긍심을 가지고 흔들림 없이 국민을 지키고 국가를 수호할 것』이라며, 『경찰은, 명예와 긍지라는 위대한 자산을 남기고 떠나신 전사‧순직경찰관들을 결코 잊지 않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아울러, 『앞으로도, 전사‧순직 경찰 선배님들의 영예성을 드높이고 유가족이 자긍심을 가지고 살아가실 수 있도록 혼신의 노력을 기울일 것』임을 다짐했다.   강영규 경우회 중앙회장도 『우리 경찰은 국가의 아픈 역사와 함께하며 우리의 소중한 영토와 주권을 수호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호국, 구국의 일념으로 헌신해 왔다』면서 『사랑하는 가족을 남겨두고 조국과 민족이 부르면 호국이란 이름 아래 전쟁터로 뛰어 나갔고, 국가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위해서는 어떠한 악조건 속에서도 치안현장으로 달려 갔다』고 언급했다.   이어, 『그 소중한 희생과 헌신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은 자유와 평화를 지켜낼 수 있었고, 오늘의 경제성장과 민주주의 발전을 이루어 내는 원동력이었고, 치안강국, 대한민국의 위상을 세계에 알리는 자랑스런 국가발전의 버팀목이며 주춧돌이었다』고 강조했다.      특히, 강영규 회장은 『이곳 경찰기념공원은 나라와 국민을 지키다가 희생된 우리 경찰 선배들의 영령이 살아 숨쉬는 공간이며, 그들의 넋을 기리는 엄숙한 장소로, 이러한 고귀한 정신을 기리는 이곳이 바로 경찰청 정문 앞에 자리하고 있음을 통해, 님들의 숭고한 경찰정신의 의미를 새기고 이어 나가야 할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사명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행사는 경찰 유가족의 자작시 낭송, 추모 공연으로 故人들을 추모했고, 경찰 가족들간의 친목과 화합을 나누는 시간을 마련했다. 출처http://www.ex-police.or.kr/now/news.php?ptype=view&idx=51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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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산업 선구자” 故조양호 회장 1주기 추모식

한진그룹은 고 조양호 회장의 서거 1주기를 맞아 8일 오후 경기 용인시 기흥구 신갈동 선영에서 추모식을 가졌다. 아들 조원태 회장과 부인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 막내 조현민 한진칼 전무를 비롯한 가족과 90여 명의 그룹 임원이 모여 고인의 삶을 되새겼다. 조원태 회장과 경영권 갈등을 겪고 있는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은 참석하지 않았다. 이날 오전 가족들은 조 전 회장을 모셔 놓은 강원 평창군 진부면 소재 월정사에서 추모제를 지낸 뒤 오후에 선영에서 그룹 임원들과 함께 헌화 및 참배를 했다. 당초 한진그룹은 조 전 회장의 1주기에 사진전을 열지 고민했다. 은퇴 이후 사진을 찍으며 여생을 보내고 싶어 했던 고인의 뜻을 기리려는 의미였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 두기에 부응하고자 이날 추모식은 특별한 행사 없이 간소하게 진행했다.       조 전 회장은 1974년 대한항공 입사 후 1999년 대한항공 회장, 2003년 한진그룹 회장 자리에 오르며 그룹을 이끌었다. 특히 회사가 위기에 빠질 때마다 과감한 결단으로 돌파구를 찾은 리더십은 업계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출처:http://www.donga.com/news/article/all/20200409/1005671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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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신영 전 국무총리 별세 ‘향년 89세’

신영 전 국무총리가 21일 별세했다. 향년 89세. 노 전 국무총리는 격동의 1980년대에 대한민국 외교·안보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로, 정통 외교관 출신으로 5공화국 국정의 최전선에 섰던 인물이다.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22일 “노 전 총리가 어제 서울대병원에서 돌아가셨다”며 “숙환으로 별세한 것으로 알고 있으며 빈소는 아침 9시께 차려질 예정”이라고 했다. 고인은 평안남도 강서 태생으로, 서울대 법대 졸업 1년 전인 1953년 고시행정과에 합격, 1955년 외무부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고인은 1980년 8월 고시 출신 외교관으로는 처음으로 외무장관에 올랐으며 장관 시절 1965년 한일협정 이후 최대 규모의 양국 간 경협협상을 맡기도 했다. 안기부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에는 중국과 첫 공식 대화의 물꼬를 트게 한 중국 여객기 불시착 사건, 사할린 상공에서 발생한 소련기에 의한 대한항공기 격추사건, 아웅산 테러암살사건 등 굵직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는 1987년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이 불거지자 정권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용퇴, 32년간의 공직생활을 마감했다. 이후 당시 여당이었던 민정당 고문을 지냈으며 1994년부터 2012년까지 롯데복지재단 이사장을 역임했다. 노 전 총리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대표적 멘토로도 잘 알려져 있다. 1970년대 초대 주인도대사로 나갈 때 반 총장을 서기관으로 데려간 데 이어 방글라데시와 수교할 때도 반 총장을 동행시켰다. 특히 1985년 총리로 취임했을 당시 반 전 총장을 초고속 승진시켜 의전비서관에 임명하기도 했다. 고인은 총 2년3개월간 총리직을 수행, 이명박정부의 김황식 국무총리(2010년 10월1일∼2013년 2월26일·2년 4개월) 이전까지 최장수 총리 기록을 보유하기도 했다. 노 전 총리의 부인 김정숙 여사는 10년 전인 2009년 4월 숙환으로 별세했다. 고(故) 김 여사와 슬하에 3남 2녀를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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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스 자산운용 설립자 故 김대영 의장 1주기 추모식

지난 2일 이지스 자산운용에서 이지스 자산운용 설립자인  故 김대영 의장의 1주기 추모식을 거행하였다. 1937년 황해도에서 태어난 김 의장은 2010년 이지스자산운용을 창업했다. 고인은 경복고와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통계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1961년 한국개발연구원을 시작으로 1980년 경제기획원 조사통계국장, 경제기획국장 등을 거쳤다. 986년 총리실 국무행정조정관을 지냈다. 1990년 제15대 건설부 차관으로 취임했고 1991년 공직에서 물러났다. 대한주택공사 사장과 제9~10대 해외건설협회장을 지냈다. 이규성 전 재정경제부장관과 함께 코람코자산신탁을 설립해 2007년까지 이 회사 사장을 맡았다. 회사에서 나온 뒤 2010년에는 이지스자산운용(구 PS자산운용)을 설립해 국내 운용자산 규모 1위 부동산 전문 자산운용사로 키워냈다 이지스 자산운용을 발전하게끔 이바지한 故 김대영 의장은 2018년 10월 자택에서 숙환으로 별세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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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신양회 설립자 故 김상수 명예회장 25주기 추모식

故 김상수 명예회장은 1967년 현재의 성신양회의 전신인 성신화학(주)을 세웠다. 김상수 명예회장은 경남 울산 출신으로 일제 강점기였던 1944년 독립군 군자금 조달 사건에 연루돼 10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김 명예회장은 1949년 조선해탄공업사, 1951년 김천석탄공업 등을 세웠고 1967년 성신화학을 창업했다. 성신화학이 세워진 시점은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마무리되고 2차 계획이 시작될 때였다. 한국의 시멘트 산업은 1962년 이전까지 동양시멘트와 대한양행이 운영하는 두 곳의 공장에만 의존했다. 1차 경제개발 계획과 함께 건설 사업이 확대되면서 1962년 이후 성신화학을 비롯해 쌍용양회, 한일시멘트, 현대건설 단양공장, 충북시멘트 등이 잇따라 공장을 세웠다. 성신화학은 1968년 12월 단양 시멘트 공장을 준공했다. 1976년 주식을 증권거래소에 상장했으며 이듬해인 1977년 회사 이름을 성신양회공업(주)으로 변경했다가 2003년 지금의 이름인 성신양회(주)로 바꿨다. 2006년 한 해에만 충남 아산, 충주(양성 · 주덕), 경기 용인, 청주 등 레미콘 공장 5곳을 인수했다. 2010년 4월 성신베트남 법인을 설립했다. 2014년 미얀마 성신, 성신F&B를 계열회사로 추가했다. 2016년 베트남 소재의 무역 및 유통업체 성신네트워크, 2017년 싱가포르 소재의 무역업체 진성인터내셔널을 각각 설립했다. 2018년 11월 성신양회가 레미콘 제조 및 판매업체인 한라엔컴을 인수하면서 전국 3위의 레미콘 기업(출하량 기준)으로 도약했다. 성신양회의 주력 생산품은 시멘트와 레미콘이다. 시멘트는 단양공장에서 연 1100만 톤 정도를 생산한다. 전국 6개 유통 기지와 5개 영업지사, 11개의 영업소를 갖추고 있다. 성신화학을 발전하게끔 이바지한 故 김상수 명예회장은 1994년 8월 자택에서 숙환으로 별세 하였고, 2019년 8월14일 성신양회에서 주최하는 25주기 추모식을 거행하였다.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650002&cid=43167&categoryId=43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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